만리장성 왜곡과 하북성에 있던 고조선, 고구려, 고려 35
조선 건국 초 분서갱유로 인해 고려의 천문 지리서들이 대서 수거되어 불태워졌으나
지금 이 순간에도 하북성과 산서성, 내몽골, 동북3성 지역에 관한 새로운 연구 결과가 논문으로 나왔습니다.
당대 세계 초강대국 몽골제국을 상대로 30년을 버틴 것도 모자라 제국 내 유일무이한 부마국(사위국) 이라는 독특한 지위를 얻어 왕조를 존속했던 고려 라는 나라가 이성계 조선의 성립과 일제 시대를 거쳐 거듭하여 축소 왜곡됬다는 주장은 재야 사학 쪽에서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를 해왔으나 구체적인 논문을 등재하며 힘을 쓰시는 이기훈 선생님의 열정과 수고에 경의와 감사를 보내드립니다.
앞으로 동아시아와 한국고대사 연구자들이라면 이 선생님의 연구를 거치지 않고서 자신의 주장을 펼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기존 학계의 여러 통설들을 완전히 뒤엎는 파격적인 학설임에도, 그 방대하고 탄탄한 논거에 정말 놀라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네요.
산서성 일부와 하북성, 산동성, 만주 동북3성을 넘어 한반도에 걸쳐있던 만리의 땅을 가진 나라 ("만리지국") 고려를 다시금 이해하고 잃어버린 삼국과 고려의 역사가 다시 쓰여지지길 염원합니다.
1-1. 구당서에 나오는 "요주"에 관한 기록
1-2.삼국사기에 나오는 "요주"에 관한 기록
2. 우적도에 나오는 "요" 지역
3. 청나라 시대 당시 대청광여도에 나오는 요주
4. 천하고금대총편람도에 나오는 요주
5. 대만 군사지도에 나오는 요주
6. 요주였던 곳이 오늘날 좌권현이 되었고 구글맵에서 좌권현 요주 (左权县 辽州)로 찾아봤습니다.
7. 중국 바이두 지도에 좌권현 (옛 "요주")에 남아있는 요주 지명
8. 삼천포 지명의 유래
삼천포는 본래 행정의 중심지로 발전한 곳이 아니고 포구로서 성장한 곳이었다. 고려 성종 때 조세미를 수송하기 위하여 이곳에 통양창(通陽倉)을 설치하였다. 조창을 중심으로 사람과 물산이 집산하게 되니 여기에 삼천리라는 새로운 마을이 생기게 된 것이다.
통양창이 제국의 수도이자 황도였던 개경에서 수로 3,000리나 되는 먼 곳이라 하여 이러한 지명이 생겼으며, 여기가 삼천포의 근원이라고 전하여 왔다.
삼천포에서 고려 수도 개경까지 거리가 바닷길(수로)로 3000리인데 그렇게 3000리를 따라가면 거리상으로 경기도 개성이 아닌 최소 요동반도나 발해만 일대 하북성 천진시 또는 당산시가 나옵니다. 그 곳이 고려 황제가 있던 수도라면 자연스럽게 그 서쪽에 태조 왕건이 최고의 배산임수 지형으로 우리 민족 최고의 길지로서 개경 이상으로 신성시 했던 서경(대흥부)이 있었고 바로 오늘날 북경(베이징)으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