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친 손웅정. 득점왕 손흥민, 나는 원하지 않았다
“(손)흥민이는 여전히 월드 클래스(World Class·세계적인 선수) 아닙니다.”
11일 강원도 춘천의 손흥민 체육공원에서 만난 부친 손웅정(60) SON축구아카데미 감독은 단호했다.
2011년 춘천에서 함께 훈련한 손흥민(왼쪽)과 부친 손웅정씨. [중앙포토]
손 감독은 지난 2018년 한 인터뷰에서 “흥민이는 절대 월드 클래스가 아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로부터 3년이 흘러 손흥민이 2021~22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득점왕(23골)에 등극했지만, 손 감독의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손흥민이 월드 클래스가 아니라는 생각에 변함없느냐’는 질문에 손 감독은 “저는 지금도 변함 없다”고 답했다.
아버지가 생각하는 ‘월드 클래스’의 기준은 뭘까. 손 감독은 “전 세계 최고의 축구클럽에서 (주전으로) 생존 가능한 수준이어야 한다. 흥민이가 모든 분야에서 10% 정도 더 성장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아시아인 최초로 EPL 득점왕을 거머쥔 손흥민에게 여전히 더 끌어 올려야 할 10%가 남아있을까. 손 감독은 “음악가들이 ‘솔’에 해당하는 음 높이를 유지하려면 (한 음계 위인) ‘라’를 낸다는 마음가짐으로 연습한다. 늘 10% 성장을 꿈꾸고 상상하며 생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손흥민이 골든부트 트로피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 손흥민 인스타그램]
아들이 EPL 득점왕에 등극했을 때 아버지의 심경을 묻자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손 감독은 “함부르크 시절 분데스리가 데뷔골을 넣었을 때 만큼이나 두려웠다”고 했다. 손흥민이 18세이던 지난 2010년 쾰른을 상대로 데뷔골을 넣은 날, 손 감독은 아들이 들뜰까 우려해 노트북을 압수했다. 그리곤 하늘을 보며 ‘오늘 하루만 흥민이가 망각증에 걸렸으면 좋겠다’고 기도했다.
일년에 책을 100권 정도 읽는 손 감독은 “일본 대기업 회장(마쓰시타 고노스케 마쓰시타전기 창업자)이 ‘호황은 좋고 불황은 더 좋다’고 말했다. 흥민이에게 ‘호사다마(좋은 일에는 탈이 많다)’를 자주 언급한다”며 아들이 주어진 상황에 만족하지 않길 바랐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란 표현을 쓰며 “열흘 이상 지속되는 꽃이 없고, 영원한 건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프리미어리그 최종전까지 득점왕을 다툰 모하메드 살라(리버풀)의 득점 여부를 신경 썼을까. 손 감독은 “아니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흥민이가 득점왕이 되는 걸 원치 않았다. 3~4경기 남았을 때부터 ‘산이 높으면 골도 깊다’고 말해줬다. 높이 올라갈수록 떨어질 때 아프다”고 했다.
춘천 손흥민 체육공원에서 유소년 선수를 지도하는 손흥민 부친 손웅정 씨(왼쪽). 박린 기자
늘 겸손을 강조하는 손 감독은 손흥민이 어린 시절부터 상을 받아오면 축하해줬지만, 상패는 분리수거하고 들어오라고 말했다. 이번 ‘골든 부트(득점왕)’ 트로피는 어떻게 했을까. 손 감독은 “흥민이 상을 버리는 이유는 초심이 흔들릴까 두려움 때문이다. 이번 상은 공항에서 팬들에게 보여드려야 한다는 생각에 갖고 와서 흥민이 집에 보관 중”이라고 했다.
손 감독의 교육 방식은 프리미어리그 무대에서도 화제다. 손흥민이 “안토니오 콘테 감독이 토트넘 다큐(멘터리)를 본 모양이다. ‘형(손흥윤)과 매일 4시간씩 리프팅(공을 떨어뜨리지 않게 차올리는 것) 한 게 맞느냐’고 묻기에 ‘그렇다’고 대답했더니 ‘아버지를 소개해 줄 수 있느냐’고 물어봤다”는 에피소드를 전하기도 했다.
손웅정 SON축구아카데미 감독이 11일 강원도 춘천의 손흥민체육공원에서 아이들에게 직접 시범을 보이고 있다. 춘천=박린 기자
손 감독은 지난 8일부터 손흥민 체육공원에서 ‘손흥민 국제유소년 친선 축구대회’를 개최 중이다. 손 감독은 온몸을 써가며 열정적으로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의 몸은 소위 ‘막노동 근육’처럼 온 몸이 잔근육으로 가득하다. 28세에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현역에서 은퇴한 이후 가족 생계를 위해 급여 27만원의 헬스 트레이너, 청소일, 막노동 등 투잡, 스리잡을 했다. 손흥민 함부르크 유학 시절엔 3년간 훈련장 옆 하루 50유로(6만7000원)짜리 3평 남짓한 여인숙 같은 호텔에 투숙했다. 새벽마다 아버지가 옆에서 함께 웨이트트레이닝을 하니 손흥민도 꾀를 피울 수 없었다.
2011년 춘천에서 함께 훈련한 손웅정씨와 손흥민. [연합뉴스]
스스로에 대해 “마바리 삼류 축구선수 출신”이라 부르는 손 감독은 왼발을 잘 쓰고 싶어 중3 때 오른쪽 축구화에 압정을 박았다. 오른발로 슈팅하면 압정이 발을 찌르니 왼발로 슈팅할 수 밖에 없었다. 아들에게도 왼발을 강조했다. 양말을 신을 때 왼발부터, 경기장에 들어설 때도 왼발부터 딛게 했다. 손흥민이 팔이 부러진 채로도 2골을 넣었던 것처럼, 손 감독도 프로축구 일화 소속이던 1989년 경기 중 발뒤꿈치에서 (아킬레스건이 끊어지는 듯한) ‘빡’ 소리가 났는데도 참고 뛰며 헤딩 골을 넣었다.
손 감독이 손흥민에게 바라는 게 있을까. 그는 “흥민이에게 ‘어떤 구단이든, 어떤 도시든, 혹여 연봉이 적더라도 행복하게 뛰며 은퇴하는 게 최고의 바람’이라고 말해준다. 지금도 앞으로도 그 생각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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